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YM/latte is horse

면접에 우황청심원 먹고 들어간 후기

2020/05/27 - [YM/latte is horse] - 면접에 우황청심원 먹고 들어간 후기 2 (feat. 액상형)

이 박스 안의 내용은 내가 왜 말을 못 하게 됐는지에 대한 사담이다. 

나는 말을 잘 못 한다. 말을 하면서도 '내가 잘못 알고 말하는 거면 어떡하지', '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어떡하지', '내가 지금 말하는 이 주제에 대해 상대방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어떡하지' 하는 생각들을 계속 하고, 그로 인해 말을 더듬는다.
저 생각들의 당위성은 차치하고,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끊임없이 내 말을 의심하고 검열한다. 말을 잘 할 수가 없다.

말을 해야 할 때 말을 잘 못 했던 경험이 누적돼서인지 언젠가부턴 심하게 떨게 됐다. 대학 다닐 때, 전혀 긴장하지 않았는데도 "너 왜 그렇게 떨었어? 긴장했어?" 라는 말을 들었다. 그 때 내가 무대공포증 비슷한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. 그 이후로는 낯선 환경에서 말하게 되면 몸부터 떨린다. 옵션으로, 얼굴도 붉어진다. 내가 주목받는 상황을 인식하면 그렇게 된다. 이 모든 것이 내 자유의지가 아니지만, 내 커리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. 내가 할 수 있는 건,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늠하고 그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준비하는 것 뿐이다. 이게 독이 되기도 하지만.

우황청심원을 먹기로 마음먹었던 그 때 상황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좀 떨린다. 이쯤 되면 내가 얼마나 그 상황에 얼마나 긴장하는지 충분히 쓴 것 같다.

 

어쨌거나, 이렇게 말을 못 하는 취준생인 내가 면접을 보게 됐다.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대, 도저히 면접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지 않았다. 그래서 세 살 때 먹고 안 먹어본 우황청심원을 먹기로 했다.

우황청심원을 먹기 전에 참고했던 유튜브:
1. 2의있습니다: 면접 치트키 우황청심원, 이의있습니다! (청심환 가격, 효능) 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C-w7KyWqqAg
2. 약짓는오빠들: 우황청심원 대하여 알아보자! 먹으면 잠오나요? 효능 및 효과는요? 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8Yt9TE3yayU

두 번째 클립은 사실 보다 말았다. 이유는 유튜버 이름.......................

1. 어떤 우황청심원을 먹었는가

우황청심원에는 액상형과 환형 두 종류가 있고, 대체로 액상형이 약국에서 구하기 쉬운 것 같다. 
나는 운 좋게도 동생이 얼마 전에 사둔 게 남았다고 해서 그걸 먹었다.
모 한방병원에서 제조한 환형이었고 개별포장되어있어서 면접장까지 가져가기 수월했다.

이렇게 생겼다. 딱히 크기비교 할 게 없어서 1회용 렌즈와 비교했다.

2. 언제&얼마나 먹었는가

정석은 30분~1시간인듯한데 나는 1시간 반 전쯤 먹었다. 
우황청심원을 먹으면 긴장이 과하게 풀려서 좀 멍청해진다는 얘기가 있길래, 평소에도 본인의 지능수준을 의심해 온 나는 반만 먹었다.
그리고 이 타이밍과 이 분량을 모두 후회했다.
청심원 냄새를 지우려면 양치를 해야 해서 좀 일찍 먹었는데...

3. 효과는

효과는 정말 좋았다. ...30분동안.
위에서도 썼지만 면접 1시간 30분 전에 먹었는데, 면접 초입부엔 정말 괜찮았다. 
평소 진폭이 10 정도라면 청심원이 위력을 발휘한 시간 동안은 기껏해야 2정도?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의 떨림과 비슷한 것 같다.
아주 안정적이었다는 뜻이다.
그런데 면접 시간 50분 중 30분 정도가 흘렀을 때(사실 더 됐을 수도 있다. 떨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시간이 너무 안갔다.)부터 갑자기, 특별한 질문을 받은 것도 아닌데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.
지속시간이 4시간 정도라고 알고 있는데, 내 긴장의 강도가 너무 높았는지 너무 일찍 먹은건지 너무 조금 먹은건지 셋 다인지...아무튼.
갑자기 떨리기 시작해서 필사적으로 심호흡을 해야 했다.
그 순간이 정말 당황스러웠지만, 방금 전까지 내가 잘 말하고 있었음을 상기시켜가며 겨우겨우 면접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.
면접이 끝난 다음엔 내가 사람인지 사시나무인지 같은 사자돌림이라는게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를 생각하며 10분동안 스타카토로 카톡을 했다.

4. 다음에도 먹을 것인가

물론이다. 다만 같은 우황청심원을 또 먹는다면 약 30분 전에, 한 알을 다 먹는 것이 나에게 맞는 방법일 것 같다.
고마워요 우황청심원!